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19 혁명/진행 (문단 편집) ===== 동국대학교 =====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태평로의 국회의사당 앞을 선점했을 때 [[동국대학교]] 학생들은 효자동 쪽으로 진출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김칠봉(당시 법대 '58)은 "'''이승만과 면담하러 가자!'''" 고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학생들은 경무대(현 청와대 위치보다는 약간 뒤쪽)로 향하기 시작했다. 중앙청 앞에서 경찰과 부딪친 시위대는 이에 맞서서 큰 수도관을 굴리며 행진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최루탄을 도로 주워 경찰들에게 던지며''' 전진했다. 당시 동국대는 서울대보다 경무대에 가까웠고 서울대생이 동국대로 올 때쯤엔 이미 바리케이드를 뚫기 시작했다. 이러한 바리케이드를 뚫을 때 동국대생은 당시 효자동 근처에서 공사 중이었던 대형 수도관 2개를 앞에 굴리며 전진했다.[* 지금도 좁지만 그 당시에도 좁던 그 길을 대형 수도관 2개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에 경찰은 해산을 위해 최루탄을 쐈고 이 최루탄에 항거하기 위해 학생들은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전진했다. 이것이 유혈사태의 시작이 될 것임은 모른 채로 말이다.[* 당시 이런 두건은 최루탄을 막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시야 방해로 기관총에 학생들이 죽는 것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상대로 총을 쏜 경찰의 진압은 이러한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다.] 대치 상황에서 선봉을 맡은 법대와 농대 학생들 중 일부가 3차 저지선으로 형성해 둔 소방차(혹은 전차(電車)) 위에 기어올라갔고[* 이 부분은 기록에 따라 전후 사정이 뒤바뀌어 있다. 동국대학교 측과 3.15의거기념사업회측의 기록은 발포 전이 아니라 발포 후 탈출로를 찾는 과정에서 소방차 쪽으로 오히려 진출하여 이탈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상황과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동국대생들이 바리케이드를 뚫은 것은 버려진 전차(電車)였고 소방차는 조준 사격을 피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듯하다.] 저지선을 뚫은 시위대 중 일부는 최종목표인 경무대를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위대의 선두로부터 경무대까지는 100여미터를 목전에 둔 상황. 나머지 대열은 중앙청 옆길에서 경찰과 여전히 엉켜 있었다. 마침내 오후 1시 30분경(40분이라는 얘기도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했고 총에 맞아 노희두 열사(법대 '59)와 박흥규, 이종학(농학 '59) 등 여러 명이 즉사하거나 부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러한 조준사격은 경고사격에서 최루탄으로 눈을 가린 몇몇 학생들이 전방을 보지 못해 당하게 된 것이다. 시위대가 앞으로 와도 경고사격의 조준점을 낮춰야 했던 경찰들은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몇 명의 학생들이 즉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당시 조준사격은 일반 소총이 아닌 기관총을 쏜 것이다. 조준 사격에 분노할 대로 분노한 법대 학생들은 서소문을 지나 서대문 로터리로 몰려가서 적십자병원 옆 이기붕 국회의장 자택을 점거해 버린 후 한달음에 서쪽 끝인 서대문에서 동쪽 끝인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시위를 벌이다가 계엄령이 선포되고 한참 지나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해산했다. "희두가 4.19 혁명 당일의 최초 희생자였다"고 김칠봉 열사는 증언하였고 노희두 열사는 불행히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법정대학의 후신인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은 이를 기리는 의미에서 현재에도 '선봉법대' 의 칭호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4월 중순에는 단과대 로비에 분향소를 마련해 추모하고 있다. 또한 동국대 전체적으로는 만해광장 한 켠에 '동우탑' 을 건립하여 기리고 있으며 매년 수유리 4.19 민주묘역에서 북한산을 오르는 '4.19 등반대회' 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 4.19 혁명 50주년을 맞이하여 정부에서 수여한 4.19 혁명 공로훈장 건국포장 239개 중 35개가 동국대학교에 추서 혹은 서훈되었다. ||[[파일:attachment/419-1.jpg]]|| ||[[파일:attachment/b0007832_4758109324bbc.jpg]]|| 4.19 혁명 당시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행진에 들고 나갔던 플래카드. 2006년 당시 신축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입구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옮겨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